2021년 11월에 참여한 인간과 기술 포럼 자료집이 책자로 나왔습니다.
저는 ‘적정기술과 메이커 운동은 같은가, 다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는데, 그 내용을 공유합니다.
적정기술과 메이커 운동은 같은가, 다른가?
정해원(마을기술센터 핸즈 대표)
저는 적정기술을 통해서 에너지 교육을 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재생에너지나 탄소중립과 같은 에너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슈가 있는데 적정기술을 통해 직접 만들어 보면서 에너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적인 목적으로 적정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주여행이 현실화하고 있으며, 스마트기술이 속속 우리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요즘 ‘적정기술’은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진화해나가야 하는지 발제문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었고, 유효석 대표의 활동은 거대기술이나 상업화된 첨단기술이 아닌 우리 일상의 기술로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적정기술운동과 메이커운동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토론하려 합니다. 구체적인 예로 발제자는 “적정기술이 AI까지도 포함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질문해보려 합니다.
적정기술과 메이커 운동의 접점
적정기술 운동과 메이커 운동의 맥락을 살펴보면 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적정기술은 60년대에 태어나 기술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중장년이라면, 메이커 운동은 2000년대에 태어나 반짝거리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쉬운 비유로 적정기술을 ‘자전거’라고 한다면, 메이커는 ‘전동킥보드’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이런 적정기술과 메이커 운동의 역사적 맥락은 다르지만, 분명히 어떤 접점도 있습니다. 적정기술은 ‘의미나 옳음’, 이런 것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있고, 메이커 운동은 ‘재미나 좋음’, 이런 것에 방점을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재미와 의미가 같이 가야 하는데 이 둘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지를 우리가 계속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적정기술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의미를 더 살리면서도 사람들이 재미있게 누릴 수 있는 적정기술 메이커는 어떻게 탄생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적정기술과 메이커운동 이 두 가지를 구별하기 어려운데, 사회문제를 해결한다거나 DIY, 그리고 정보를 오픈소스로 공개한다거나 교육적 기능을 강조하는 것, 이런 면에서는 유사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적정기술은 상대적으로 지역자원들을 활용한다거나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리고 지속가능성, 최근에 여러 가지 환경오염이나 전 지구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런 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 기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합니다.
첨단기술 시대 적정기술의 역할
그래서 첨단기술이나 상업기술과 달리 적정기술은 ‘기술의 흐름에 대해서 다른 방향도 있는 거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기술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이 어떤 맥락에서 적용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술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것이 적정기술의 철학이자 사고방식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AI기술은 어떻게 적정기술로 활용할 수 있을까를 구체적으로 질문해봐야 합니다.
첨단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에 적정기술이 어떤 역할을 할까를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코로나 때문에 2년 이상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우리를 코로나로부터 예방해 주는 것은 마스크나 손 소독, 거리 두기 같은 일상의 기술들입니다. 물론, 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서는 응급실도 필요하고, 중환자실도 필요하고, 그다음에 백신 같은 첨단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일상에서 우리를 지키는 기술들이 어떻게 각각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들은 필요합니다.
거대 기술과 자본을 통한 대규모 생산과 소비, 그 폐기물로 인해 지구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고, 우리가 내뿜는 온실가스로 지구가 뜨거워지는 이때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비록 적정기술이 완전하지 못할지라도 새로운 대안을 상상하게 하고 첨단 기술에 딴지를 거는 역할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2021년 11월 18일)
